불안에 떨며 긴 밤을 보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밤이 찾아왔다. 나는 내게 왜 이런 어둠이 찾아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아직은 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끔은 영원히 이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본 찬란한 새벽 빛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눈부신 새벽 빛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불안의 밤을 가르며 어둠에 묻혀있던 대지를 밝히는 순간을 황홀하게 맞이하려면 나는 더 이상 절망하고 있을 수 없다.
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지구가 태양을 30바퀴 돌고 다시 같은 자리에 왔다. 나는 그동안 수 많은 새벽을 맞이했다. 수백 수천 번의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나는 황홀하지 않았지만 새벽을 맞이했다. 내 앞에 얼마나 많은 새벽이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숨쉬는 한 더 이상 놓치지 않겠다. 30번째 생일에 쓰는 이 글에서 나는 다짐한다. 앞으로 3가지를 하겠다.
첫째로 운전하는 직업을 갖겠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원치 않아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나는 혼자 일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온전하다. 지금까지 어떤 일도 1년 이상 지속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운전이 편하다. 차를 모는 일이 어느정도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나만의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 직업으로써의 운전은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가능하면 차를 모는 일을 할 것이고 근무 시간은 최소화할 것이다.
둘째로 몸과 마음을 보살피겠다. 매일 명상과 운동할 시간을 갖겠다. 나는 아직 내 안에 불안과 우울을 뿌리뽑지 못했다. 여러 시도를 해 보았지고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명상이라 믿고 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하고 근본적인 해결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뇌는 경험에 따라 구조를 바꾸는데, 이를 신경 가소성이라 부른다. 뇌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결국 다시 같은 구멍에 빠진다. 명상은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셋째로 나머지 모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를 하는 데 쓰겠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그 길을 가겠지만 나는 다른 길을 가야한다. 누군가는 불평하지 말고 남들 다 하니까 그냥 하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거의 죽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충분히 노력을 해 봤으니, 남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없다. 나의 일을 할 때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을 물론이고 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다. 온전한 나로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3년 뒤,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하면 지금 이 일을 해야 한다. 더디더라도 5년 뒤를 생각하면 해야한다. 돈을 벌 수단은 결국에는 이 일이 되어야 한다. 나는 자신이 있다.
밀을 분류하는 기준은 종자(보통밀, 스펠트밀, 듀럼밀 등), 파종 시기(겨울밀, 봄밀), 밀알의 색상(붉은 밀, 흰 밀), 조직의 단단하기(경질밀, 연질밀), 생산지(미국 밀, 캐나다 밀 등), 단백질 함량(강력밀, 중력밀, 박력밀) 등이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우리가 집에서 빵을 굽는 데 실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기준인 단백질의 함량과 도정 정도그리고 품종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미국 밀이건 캐나다 밀이건 이 조건이 비슷한 밀은 비슷한 결과물을 주기 때문입니다.
1. 단백질 함량에 따른 분류
밀은 반죽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가스를 잡아두고 부풀어 빵을 만드는 유일한 곡물입니다. 가스를 잡아두는 반죽의 탄력성은 밀에 포함된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에서 옵니다. 글루텐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밀일수록 부피가 큰 빵을 만듭니다. 쌀가루를 물로 반죽하면 신축성을 주는 글루텐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늘어나지 않고 툭툭 끊어집니다. 밀가루처럼 가스를 잡아둘 수 없는 것이지요. 단백질의 함량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용상의 목적으로 밀가루는 3가지로 나누어 씁니다.
<글루텐 단백질에 갇힌 기체들>
1) 박력분 (Cake flour) 단백질 함량: 8~10% 용도: 제과용, 케이크, 쿠키, 비스킷 박력분은 식감이 부드럽고 많은 팽창이 필요하지 않은 케이크나 쿠키를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적은 단백질로 인해 가스를 잡아둘 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빵을 굽는 데 사용하면 빵의 부피가 매우 작아집니다.
2) 중력분 (All-purpose flour, plain flour) 단백질 함량: 9~12% 용도: 제면용, 수제비 설명: 일반적으로 박력분과 강력분 밀가루를 섞어서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마트에나 중력분 밀가루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침개나 수제비를 만들 때 많이 쓰나, 제과나 제빵용으로 대신 사용하기도 합니다.
3) 강력분 (Bread flour, strong flour) 단백질 함량: 10~13% 용도: 제빵용, 피자 설명: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이 높을수록 반죽의 탄력이 좋아지고 더 많은 가스를 잡아둘 수 있게 되어 빵의 부피가 커집니다. 강력분은 이스트를 사용하여 부피가 크고 쫄깃한 식감의 발효빵을 만드는 데 적합합니다.
*Note: 박력분이 쿠키의 특성에 더 맞고, 강력분이 빵의 특성에 더 적합하지만, 강력분으로 쿠키를 굽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코칩 쿠키를 구울 박력분이 집에 없을 때는 당장 중력분이나 강력분을 사용하면 됩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강력분)로 쿠키를 굽는 경우에는 가능한 반죽을 휘젓거나 치대지 말라고 하는데, 글루텐 형성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강력분을 제과에 이용할 때 빵을 만드는 것처럼 반죽을 하면 쿠키보다는 빵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겠지요.
2. 도정 정도에 따른 분류
밀의 낟알은 겨라는 내부를 보호하는 질긴 겉 껍질과 나중에 싹이 발아하는 배아, 싹이 자랄 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배유로 되어 있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통밀을 그대로 빻아서 쓰면 거친 겨층 때문에 식감이 좋지 않으며, 지방 많이 함유된 배아로 인해 저장성도 떨어지고, 무기질 때문에 제빵성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보통 배유만 남기고 겨층과 배아를 벗겨버리는 도정 과정을 거친 후 밀가루로 만듭니다. 도정이 잘 되어 겨와 배아가 잘 제거된 밀가루 일수록 높은 등급의 밀가루가 됩니다. 포장지에 1등급 밀가루라고 써져 있는 것은 겨와 배아가 잘 제거되어 회분함량이 0.4% 이하의 밀가루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도정 과정에서 밀은 겨와 배아에 포함된 대부분의 비타민과 식이섬유, 무기질을 잃고 탄수화물 에너지창고인 배유만 남게 됩니다.
장점 - 무기질이 적어 밀가루의 색이 밝고 제품의 색상도 깔끔하게 나오기 때문에 상품에 따라서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 식감이 부드럽고 발효도 더 잘되어 빵의 부피도 커집니다. - 구하기 쉽고 가격이 쌉니다.
단점 - 체내에 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올립니다. - 통밀에 비해 미네랄, 식이섬유, 비타민의 손실이 큽니다.
2) 통 밀가루(Whole-wheat flour) 통밀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빻은 가루.
장점 - 영양적 가치가 흰밀가루에 비해 높습니다. - 혈당을 비교적 천천히 올립니다. - 거친 식감이 오히려 씹는 맛이 있습니다.
단점 - 무기질로 인해 발효력과 팽창력이 떨어집니다. - 식감과 향이 거칠고 텁텁할 수 있습니다. - 빵의 색이 어둡습니다. - 흰밀가루에 상대적으로 비싸고 구하기 힘듭니다. - 빵이 상대적으로 금방 변질됩니다.
* 일반적으로 통밀가루는 박력분 또는 강력분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같은 종자라면 통으로 빻을 때 상대적으로 무기질이 많은 겨와 배아가 들어가기 때문에 동일한 무게의 정제밀과 비교했을 때 단백질 함량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빵을 구울 때 통밀가루를 많이 쓸수록 팽창력이 떨어질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3. 품종에 따른 분류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밀의 품종들)
오늘날의 밀을 얻기까지 인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의 만년 동안 밀의 품종을 계량해 왔습니다. 현대 밀의 조상이 되는 고대의 밀들은 현대밀에 밀려 오랫동안 외면 받았지만 현대밀과는 다른 맛과 영양적 특성으로 시장에서 조금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밀의 진화>
1) 보통계 밀 (Common wheat / Bread wheat) 세계에서 생산되는 밀의 90%이상을 차지하는 밀로, 우리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밀가루의 원료입니다. 에머라는 야생 밀은 기원전 약 9600년 전에 처음 인간에 의해 재배가 시작되어 오랜 세월을 인간의 선택을 거치며 유전적 변이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낟알은 더 커지고, 씨앗이 바람에 날려 퍼지지 않고 이삭에 단단히 붙어 있게 되어 씨앗을 수확하기 쉬워졌고, 글루텐 함량이 높아져 빵을 만드는 데도 더 적합해 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밀은 씨앗이 이삭에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식물이 가진 자연적인 씨앗 확산 메커니즘을 상실해버렸기에 야생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존하는 품종의 밀 중에는 빵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빵 밀(bread wheat)이라고도 불립니다. 빵을 포함해 파스타, 각종 면, 피자, 도넛, 시리얼, 비스킷, 쿠키 등 제과, 제빵, 제면에 모두 쓰이는 팔방미인 입니다.
<보통계 밀>
2) 스펠트 (Spelt) 스펠트밀은 기원전 6400-6200년에 등장하여 고대 밀 중에는 비교적 현대 밀과 가까운 품종입니다. 청동기와 중세 시대의 주식이었으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보통계 밀로 대체되어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에 현대의 밀 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포드맵(FODMAP) 수치가 낮다는 건강상의 이유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매우 특정한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보통계 밀 보다 값이 비쌉니다. 현대의 밀처럼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어 제빵에서 현대밀 대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밀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풍미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스펠트 밀>
*포드맵(FODMAP): Monash 대학의 소화기 학부에서 만든 용어로, 소장에서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짧은 사슬을 가진 4가지 발효성 탄수화물(Fermentable Oligosaccharides, Disaccharides, Monosaccharides, and Polyols)의 앞 글자를 따서 명명했습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IBS) 환자들은 포드맵을 많이 함유한 식품을 섭취했을 때 복통, 설사, 변비, 가스참 등의 증상이 악화됩니다. Monash 대학 연구팀의 포드맵 분석 결과 스펠트 밀의 포드맵이 보통계 밀 보다 낮다고 합니다.
<곡류의 FODMAP 함량, 출처: Monash>
*식품의 FODMAP을 확인하고 싶다면 MONASH 대학에서 만든 FODMAP어플(유로)을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
3) 에머 (Emmer)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에머는 인간이 최초로 경작하기 시작한 밀입니다. 고대 시기에는 널리 경작되었으나 현재는 유라시아 산악지형에서만 일부 재배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탈리아 에서만 파로(Farr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빵이나 수프로 즐겨먹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빵을 구울 때나 듀럼 밀처럼 파스타를 만들 때도 씁니다. 에머 밀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글루텐 함량이 낮아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들이게 좋다고 여겨집니다. 스펠트 밀 보다 풍부하고 깊은 달콤 고소한 풍미가 있다고 합니다.
<에머 밀>
4) 듀럼 (Durum) 에머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밀 품종으로 현재 보통 밀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밀 품종입니다. 그래봐야 전체 밀 생산량의 8%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보통밀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듀럼밀은 기원전 7000년 경에 에머 밀을 인공적으로 품종 계량하여 개발된 종입니다. 듀럼밀은 모든 밀 중에 가장 단단하여 제분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회분이 많이 함유되어 박력분에 가까운 밀가루가 됩니다. 따라서 강한 글루텐 형성이 요구되는 빵 보다는 파스타를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됩니다. 듀럼 밀만으로 빵을 굽게 되면 기공이 적고 부피가 작으며 탄력이 약한 빵이 됩니다.
5) 아인콘 (Einkorn) 가장 오래된 밀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는 품종입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 의해 경작되었고 현재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서남부 지역에서만 일부 경작되고 있습니다. 아인콘 밀은 다른 품종에 비해 산출량이 낮지만 다른 밀이 생존할 수 없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자랍니다. 알맹이는 매우 작고 현미처럼 생겼습니다. 아인콘 만의 독특한 고소한 풍미가 있으며 현대 밀 보다 특정 무기질과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가가 더 높다고 합니다.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현대 밀 대용으로 쓸 수 있지만 팽창력이 부족하여 빵의 부피가 작습니다.
<아인콘 밀>
6) 호라산 (카무트) Khorasan (Kamut) 호라산은 고대 지명을 따 이름 지어졌습니다. 가끔은 상표명인 카무트라고 불리기도 하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매우 적은 양이 생산됩니다. 알맹이가 현대 밀의 두 배 정도 되며 현대 밀 보다 많은 단백질과 비타민 E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 밀 대용으로 제과나 제빵에 사용할 수 있으며 식감이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가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지금까지 겪었던 나를 괴롭히는 4가지 정신적 현상에 대해 쓰려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것도 있고 사라진 것도 있다.
이번에는 그 중에 하나인 강박적 사고와 그에 수반하는 감정에 대한 것이다.
강박적 사고가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수렁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나의 경험을 밑그림 삼아 써놓았다.
이 정신 현상에 대한 의학적인 용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감정의 늪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생각에서 시작되나 종국에 가서는 헤어나오기 힘든 감정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문제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마음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이다.
그럴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강박적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를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환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정의 늪
이 현상은 두 개 이상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발된다.
보통은 두 개 중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유는 둘다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맘에 안 들거나 하나가 오로지 단점만 있다면 선택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두 개가 비슷하게 좋은 경우다.
이 경우 논리적인 해결책은 둘 다 갖거나,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과감히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먼저, 전자는 나에게 문제가 된다.
하나만 선택하고자 하는 나의 극단적인 성향 때문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궁극적인 하나를 찾는다.
“필요한 거 하나만 있으면 된다.”가 나의 가치관 이었다.
비슷한 선택지 중에서도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과감히 버릴 수 있느냐?
그것도 나에게는 어렵다.
두 개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 자체가 완벽한 하나가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 때문에 선택의 문턱을 넘어도 첫 번째 이유에 다시 발목이 잡힌다.
즉, 집착적인 성향 때문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온전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회의가 찾아온다.
선택을 해도 문제이고 안 해도 문제인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이 궁지에 빠지는 과정은 이렇다.
고민이 시작되면 둘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두 선택지를 저울질 한다.
논리적으로 둘의 득실을 비교한다.
그 과정에서 이쪽으로 기울었다가 저쪽으로 기울었다가 갈팡질팡 한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천 번도 넘게 강물을 건너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찌되었든 하나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내 생각에 그나마 나은 하나를 고르게 된다.
그러면 이제 생각의 고뇌가 끝나는가?
이상적이지 않을 뿐 둘 중에 나에게 현실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니 이제 선택에서 자유로운 것인가?
불행히도 이 정도가 되면 이미 늦었다.
생각에 관성이 생겨서 생각을 멈출 수가 없게 된다.
내릴 수 없는 시소에 탄 상황이 된다.
머리속에서는 이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 의문을 던지고 둘을 비교하던 그 장소로 다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생각을 번복해서 다른 하나를 선택한다 해도 여전히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절벽으로 내달리는 미친 말 위에 탄 것을 알지만 내릴 수 없다.
빠져나오려 발버둥칠수록 생각의 늪에 깊이 빠진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단지 생각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에너지가 소모될 뿐이다.
생각은 감정을 동반한다.
맑은 여름 하늘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처음 두 선택지를 비교할 때의 감정은 ‘들뜬 느낌’에 가깝다.
둘 사이를 셀 수 없이 오락가락하는 강박 속에서 감정은 ‘혼란’으로 바뀐다.
강을 건너면 떠난 자리가 생각나고 다시 돌아오면 건너 자리가 그리운 상황이 반복되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혼란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해당되는 생각을 할 때마다 혼란이 같이 올라온다.
비교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으니 매번 혼란의 감정도 덤으로 받아야 한다.
생각과 감정은 계속 중첩이 되어 되풀이 할수록 그 세기가 강해진다.
종국에는 자아가 분열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상황에서도 생각은 자살기계처럼 계속 돌아간다.
한 생각에 사로잡힌 대가는 이렇다.
이 괴로움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다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뿌리를 쫓아 내려다가 보면 미니멀리즘의 본질에 닿게 된다.
그 시작은 완벽한 하나를 소유하고자 하는 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한 가지만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그것은 가능한 상태인 것인가?
필요한 하나의 궁극을 가졌다는 것은 누가 아는가?
내면을 잘 관찰해보면 그 판단의 기준은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판단은 이성이 하지만 필요의 욕구를 일으키는 것은 감정이다.
원하고 바라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감정이다.
밥을 먹을 때 밥그릇 하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좋다.
숟가락은 어떤가? 반드시 필요한가?
손으로 먹으면 되지 않는가?
식사할 때 숟가락을 쓴다면 정말 궁극적으로 필요한 하나만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가?
궁극적인 하나에 대한 필요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감정의 잣대로 정해진다.
감정은 변덕스럽다.
감정의 변덕으로는 명확한 경계를 만들 수 없다.
어제는 숟가락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이 진짜인가?
둘 모두 진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선택 사이에서 뚜렷한 경계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주관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미니멀리즘은 없다.
더 나아가면 소위 미니멀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최소를 추구한다면 그 종착지는 어떤 것도 없는 무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 외의 상태는 엄밀히 말하면 최소의 상태가 아니다.
무의 상태가 아닌 최소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모순의 수렁에 빠뜨리는 일이다.
원하는 감정이 크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택은 여전히 어려운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감정이 강한 사람이다.
꽃 향기에 나는 발길을 멈출 수 밖에 없다.
꽃 향기 따위가 나에게 일으키는 감정의 요동은 너무나 강하다.
나의 성향으로 인해 이 괴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비슷한 아픔을 겪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 나락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 쓰려고 한다.
수도 없이 같은 구멍에 빠지다 보니 요령이 생겨 현재는 수렁에 잘 빠지지 않게 되었다.
낌새가 이상하면 내가 즉시 발을 빼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빠져도 전보다는 쉽게 나온다.
하지만 나의 극단적인 기질로 인해 언제라도 다시 빠질 수 있으며 의식적으로 정신의 고삐를 잡지 않으면 아주 깊이 빠질 것이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알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이 있다.
알아야 할 것은 ‘궁극적이고 완벽한 하나를 가진 절대적인 상태는 처음부터 불가능 하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 바람대로 만들었다면 이런 모양새는 아닐 것이다.
검은 예리하지만 부드러움이 없다.
솜은 부드럽지만 예리함은 없다.
검의 예리함과 솜의 부드러움을 모두 갖는 이상적인 무엇인가는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하나만 가지려면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 선택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베는 상황에서는 검이 필요하고 또 다른 의미의 베는 상황에서는 솜이 필요하다.
감정에 따라 오늘은 검의 예리함을, 내일은 솜의 부드러움을 원할 것이다.
둘 사에서 고민하는 상황이 둘 모두를 필요로 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에 대한 고민은 무의미한 것이다.
애초에 완벽한 하나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완벽하다는 기준도 가변적이다.
‘완벽한 하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며 생각의 늪으로 빠지는 길이다.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그 생각에 대한 답이 애초에 없다는 것을 먼저 인지한다.
어차피 모든 선택이 불완전 하니, 어떤 선택을 하든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을 선택하든, 저것을 선택하든, 선택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완벽한 것은 없다.
이 세상 자체가 내게는 불완전한데 어쩌겠는가?
내 마음 또한 불변하는 것이 아닌데 어쩌겠는가?
불완전한 세상과 내 자신을 인정할 수 없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적당한 것을 선택하고 살아가야 한다.
바보처럼 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도 안 된다면 혼란의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선택을 보류한다.
미쳐있는 상태에서 온전한 분별력이 있을 리가 없다.
그 다음 해야할 일은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뇌는 생각을 하고 느끼는 방향으로 계속 강화된다.
뇌 속의 해당 회로가 너무 강해졌으니 다시 약화시켜야 한다.
방법은 회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뇌의 시냅스 회로는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회로는 강화될수록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방향으로 시냅스 회로를 강화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그쪽으로 빠질 때마다 가능한 빠르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머리 속에서는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분석을 계속하면 분명 더 나은 답이 있을 것 같다는 강박이 계속해서 충돌한다.
그 속에서도 주위를 돌리기 위한 뭔가를 계속 해야한다.
파괴적이거나 자학적이지 않은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해야한다.
충격이 강할수록 빠져나오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아 3개월 뒤에 죽는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강박에서 즉시 자유로워질 것이다.
강박이 아무리 심해도 생존에 대한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그 정도의 충격을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즉시 빠져나오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록 조금씩 강박에서 멀어진다.
당분간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거나 사람들과 봉사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정신없이 머리 쓰는 일을 하거나 계속 명상을 한다.
생각이 새어나갈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모래 위에 파인 발자국이 파도에 씻겨 나가듯 나를 옥죄던 강박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길은 없다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