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을 받을 때 나는

“글쎄요… 일단 뭐라도 해서 돈을 좀 모으려 고요.”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거지 같은 대답이다.

진짜 대답은 “사람이 없는 예쁜 모래사장이 있는 바닷가에 땅을 살 겁니다. 


그곳에 통나무 집을 짓고 가능한 자급자족하며 살 겁니다. 


그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활을 쏘고 농사를 짓고 명상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 4가지는 저의 일생에 거쳐서 숨이 붙어있는 한 하려고 해요.


각 분야를 깊이 실험하고 연구해서 저만의 정립된 체계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예술과 자연 외에 제가 관심 있는 게 이 세상에는 딱히 없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란다면, 그 여정을 함께할 동반자가 있다면 더 좋겠군요. 


하지만 혼자 여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때로는 외롭겠지만…


의미 없는 사람들 속에 둘려 쌓여 사는 건 더 외롭거든요.”이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지 않고 둘러대는 이유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꿈에 대해 말할 때는 직업적인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나의 대답은 이목을 끈다.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속내를 밝히지 않게 되었다.


이질감만 커질 뿐이다.


돈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돈을 구하는 과정도 수단을 얻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수단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다음 질문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필요한 만큼 있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돈이 무한해도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괜찮은 결론이다.


그냥 죽는 날까지 적당히 살아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원하는 것이 돈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은 상상 속에서 이루어야 한다. 


나에게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현실은 한계적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이상에 가깝게 가고자 노력할 뿐이다.

 

 

 

구체적인 대답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느 날 빈 캔버스와 물감이 주어졌다.


캔버스에 이런 저런 밑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수년에 걸쳐 큰 그림이 잡히기 시작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채워 나간다.


어느 순간부터 그림의 전체적인 형태와 분위기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명확히 안다.


앞으로도 국소적인 변화가 있겠지만 이 정도면 그림은 완성되었다.


모든 것은 탐구를 하며 내면을 관찰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비한 에너지와 시간은 상당했던 것 같다.


남들이 사회생활에 전념하는 동안 나는 이런 것들에 몰두했다. 


세상에서는 낭비한 시간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삶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에 있었다면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았겠지만,


내 삶의 가치는 그곳에 없다.


이것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내가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지 알고 있다는 정도다.


정글 한 복판에 떨어지든, 사막 한 가운데 고립되든, 가야할 방향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루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내일도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색의 물감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면, 캔버스에 무엇을 그릴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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