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을 분류하는 기준은 종자(보통밀, 스펠트밀, 듀럼밀 등), 파종 시기(겨울밀, 봄밀), 밀알의 색상(붉은 밀, 흰 밀), 조직의 단단하기(경질밀, 연질밀), 생산지(미국 밀, 캐나다 밀 등), 단백질 함량(강력밀, 중력밀, 박력밀) 등이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우리가 집에서 빵을 굽는 데 실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기준인 단백질의 함량도정 정도 그리고 품종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미국 밀이건 캐나다 밀이건 이 조건이 비슷한 밀은 비슷한 결과물을 주기 때문입니다.

 

 

 

1. 단백질 함량에 따른 분류


밀은 반죽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가스를 잡아두고 부풀어 빵을 만드는 유일한 곡물입니다. 가스를 잡아두는 반죽의 탄력성은 밀에 포함된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에서 옵니다. 글루텐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밀일수록 부피가 큰 빵을 만듭니다. 쌀가루를 물로 반죽하면 신축성을 주는 글루텐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늘어나지 않고 툭툭 끊어집니다. 밀가루처럼 가스를 잡아둘 수 없는 것이지요. 단백질의 함량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용상의 목적으로 밀가루는 3가지로 나누어 씁니다.

<글루텐 단백질에 갇힌 기체들>


1) 박력분 (Cake flour)
단백질 함량: 8~10%
용도: 제과용, 케이크, 쿠키, 비스킷
박력분은 식감이 부드럽고 많은 팽창이 필요하지 않은 케이크나 쿠키를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적은 단백질로 인해 가스를 잡아둘 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빵을 굽는 데 사용하면 빵의 부피가 매우 작아집니다.

2) 중력분 (All-purpose flour, plain flour)
단백질 함량: 9~12%
용도: 제면용, 수제비
설명: 일반적으로 박력분과 강력분 밀가루를 섞어서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마트에나 중력분 밀가루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침개나 수제비를 만들 때 많이 쓰나, 제과나 제빵용으로 대신 사용하기도 합니다. 

3) 강력분 (Bread flour, strong flour)
단백질 함량: 10~13%
용도: 제빵용, 피자
설명: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이 높을수록 반죽의 탄력이 좋아지고 더 많은 가스를 잡아둘 수 있게 되어 빵의 부피가 커집니다. 강력분은 이스트를 사용하여 부피가 크고 쫄깃한 식감의 발효빵을 만드는 데 적합합니다. 

*Note: 박력분이 쿠키의 특성에 더 맞고, 강력분이 빵의 특성에 더 적합하지만, 강력분으로 쿠키를 굽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코칩 쿠키를 구울 박력분이 집에 없을 때는 당장 중력분이나 강력분을 사용하면 됩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강력분)로 쿠키를 굽는 경우에는 가능한 반죽을 휘젓거나 치대지 말라고 하는데, 글루텐 형성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강력분을 제과에 이용할 때 빵을 만드는 것처럼 반죽을 하면 쿠키보다는 빵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겠지요.

 

 

2. 도정 정도에 따른 분류


밀의 낟알은 겨라는 내부를 보호하는 질긴 겉 껍질과 나중에 싹이 발아하는 배아, 싹이 자랄 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배유로 되어 있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통밀을 그대로 빻아서 쓰면 거친 겨층 때문에 식감이 좋지 않으며, 지방 많이 함유된 배아로 인해 저장성도 떨어지고, 무기질 때문에 제빵성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보통 배유만 남기고 겨층과 배아를 벗겨버리는 도정 과정을 거친 후 밀가루로 만듭니다. 도정이 잘 되어 겨와 배아가 잘 제거된 밀가루 일수록 높은 등급의 밀가루가 됩니다. 포장지에 1등급 밀가루라고 써져 있는 것은 겨와 배아가 잘 제거되어 회분함량이 0.4% 이하의 밀가루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도정 과정에서 밀은 겨와 배아에 포함된 대부분의 비타민과 식이섬유, 무기질을 잃고 탄수화물 에너지창고인 배유만 남게 됩니다.

<통밀과 정제밀의 차이>


1) 정제 밀가루(Refined flour)
겨층과 배아를 벗겨낸 밀을 빻아서 만든 가루.

장점
- 무기질이 적어 밀가루의 색이 밝고 제품의 색상도 깔끔하게 나오기 때문에 상품에 따라서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 식감이 부드럽고 발효도 더 잘되어 빵의 부피도 커집니다. 
- 구하기 쉽고 가격이 쌉니다.

단점
- 체내에 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올립니다.
- 통밀에 비해 미네랄, 식이섬유, 비타민의 손실이 큽니다.


2) 통 밀가루(Whole-wheat flour)
통밀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빻은 가루.

장점 
- 영양적 가치가 흰밀가루에 비해 높습니다.
- 혈당을 비교적 천천히 올립니다.
- 거친 식감이 오히려 씹는 맛이 있습니다.

단점 
- 무기질로 인해 발효력과 팽창력이 떨어집니다.
- 식감과 향이 거칠고 텁텁할 수 있습니다.
- 빵의 색이 어둡습니다.
- 흰밀가루에 상대적으로 비싸고 구하기 힘듭니다.
- 빵이 상대적으로 금방 변질됩니다.

* 일반적으로 통밀가루는 박력분 또는 강력분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같은 종자라면 통으로 빻을 때 상대적으로 무기질이 많은 겨와 배아가 들어가기 때문에 동일한 무게의 정제밀과 비교했을 때 단백질 함량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빵을 구울 때 통밀가루를 많이 쓸수록 팽창력이 떨어질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3. 품종에 따른 분류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밀의 품종들)


오늘날의 밀을 얻기까지 인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의 만년 동안 밀의 품종을 계량해 왔습니다. 현대 밀의 조상이 되는 고대의 밀들은 현대밀에 밀려 오랫동안 외면 받았지만 현대밀과는 다른 맛과 영양적 특성으로 시장에서 조금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밀의 진화>

 

1) 보통계 밀 (Common wheat / Bread wheat) 
세계에서 생산되는 밀의 90%이상을 차지하는 밀로, 우리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밀가루의 원료입니다. 에머라는 야생 밀은 기원전 약 9600년 전에 처음 인간에 의해 재배가 시작되어 오랜 세월을 인간의 선택을 거치며 유전적 변이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낟알은 더 커지고, 씨앗이 바람에 날려 퍼지지 않고 이삭에 단단히 붙어 있게 되어 씨앗을 수확하기 쉬워졌고, 글루텐 함량이 높아져 빵을 만드는 데도 더 적합해 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밀은 씨앗이 이삭에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식물이 가진 자연적인 씨앗 확산 메커니즘을 상실해버렸기에 야생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존하는 품종의 밀 중에는 빵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빵 밀(bread wheat)이라고도 불립니다. 빵을 포함해 파스타, 각종 면, 피자, 도넛, 시리얼, 비스킷, 쿠키 등 제과, 제빵, 제면에 모두 쓰이는 팔방미인 입니다. 

<보통계 밀>


2) 스펠트 (Spelt)
스펠트밀은 기원전 6400-6200년에 등장하여 고대 밀 중에는 비교적 현대 밀과 가까운 품종입니다. 청동기와 중세 시대의 주식이었으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보통계 밀로 대체되어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에 현대의 밀 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포드맵(FODMAP) 수치가 낮다는 건강상의 이유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매우 특정한 지역에서만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보통계 밀 보다 값이 비쌉니다. 현대의 밀처럼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어 제빵에서 현대밀 대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밀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풍미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스펠트 밀>


*포드맵(FODMAP): Monash 대학의 소화기 학부에서 만든 용어로, 소장에서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짧은 사슬을 가진 4가지 발효성 탄수화물(Fermentable Oligosaccharides, Disaccharides, Monosaccharides, and Polyols)의 앞 글자를 따서 명명했습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IBS) 환자들은 포드맵을 많이 함유한 식품을 섭취했을 때 복통, 설사, 변비, 가스참 등의 증상이 악화됩니다. Monash 대학 연구팀의 포드맵 분석 결과 스펠트 밀의 포드맵이 보통계 밀 보다 낮다고 합니다. 

<곡류의 FODMAP 함량, 출처: Monash>

*식품의 FODMAP을 확인하고 싶다면 MONASH 대학에서 만든 FODMAP어플(유로)을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

3) 에머 (Emmer)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에머는 인간이 최초로 경작하기 시작한 밀입니다. 고대 시기에는 널리 경작되었으나 현재는 유라시아 산악지형에서만 일부 재배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탈리아 에서만 파로(Farr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빵이나 수프로 즐겨먹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빵을 구울 때나 듀럼 밀처럼 파스타를 만들 때도 씁니다. 에머 밀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글루텐 함량이 낮아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들이게 좋다고 여겨집니다. 스펠트 밀 보다 풍부하고 깊은 달콤 고소한 풍미가 있다고 합니다.

<에머 밀>

 

4) 듀럼 (Durum) 
에머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밀 품종으로 현재 보통 밀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밀 품종입니다. 그래봐야 전체 밀 생산량의 8%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보통밀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듀럼밀은 기원전 7000년 경에 에머 밀을 인공적으로 품종 계량하여 개발된 종입니다. 듀럼밀은 모든 밀 중에 가장 단단하여 제분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회분이 많이 함유되어 박력분에 가까운 밀가루가 됩니다. 따라서 강한 글루텐 형성이 요구되는 빵 보다는 파스타를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됩니다. 듀럼 밀만으로 빵을 굽게 되면 기공이 적고 부피가 작으며 탄력이 약한 빵이 됩니다.

 

5) 아인콘 (Einkorn)
가장 오래된 밀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는 품종입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 의해 경작되었고 현재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서남부 지역에서만 일부 경작되고 있습니다. 아인콘 밀은 다른 품종에 비해 산출량이 낮지만 다른 밀이 생존할 수 없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자랍니다. 알맹이는 매우 작고 현미처럼 생겼습니다. 아인콘 만의 독특한 고소한 풍미가 있으며 현대 밀 보다 특정 무기질과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가가 더 높다고 합니다.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현대 밀 대용으로 쓸 수 있지만 팽창력이 부족하여 빵의 부피가 작습니다.

<아인콘 밀>


6) 호라산 (카무트) Khorasan (Kamut)
호라산은 고대 지명을 따 이름 지어졌습니다. 가끔은 상표명인 카무트라고 불리기도 하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매우 적은 양이 생산됩니다. 알맹이가 현대 밀의 두 배 정도 되며 현대 밀 보다 많은 단백질과 비타민 E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 밀 대용으로 제과나 제빵에 사용할 수 있으며 식감이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가 있다고 합니다.

<호라산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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