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마 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경계 바로 앞까지 온 것 같다.

위태로운 벼랑길을 따라 걷는 것은 기분이다.

내 마음을 몸으로 친다면 팔이 하나 없고 다리가 하나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하니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깨질 것 같고 외롭고 불안했던 적이 있었을까.

원인은 모르겠다.

그냥 시기가 좋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불안과 외로움은 지금이 아닌 미래의 어느 시점에라도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그 길로 빠질 여지를 이미 많이 지니고 있다.

마음이 멍 든 것처럼 아프다.

그럼에도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이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운명을 바꿀 기회.

이 지옥살이에서 벗어날 기회.

이번에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두번 째 빠지더라도 다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녀석이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두렵다. 아프다. 슬프다. 당장 깨질 것 같다.

지금껏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을 만큼 했는가? 

아닌 것 같다. 

저항했지만 무기력하게 끌려다녔다.

상황적 여유가 없었고 워낙 지쳐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둬야겠다.

이 나락에서 나가야 겠다.

더이상 끌려다닐 힘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더이상 이 아이를 아프게할 수는 없다.

그동안 이렇게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이제 이 아이를 구해야 한다.

최악의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아직 내게 시도해볼 것이 있다.

지난 30년 동안 내가 이룬 크고 작은 성취들은 모두 외부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쪽을 뜯어 고쳐야 한다.

두려워서 오랫동안 외면해 온 일이다.

얼마간의 시간에 내게 허락될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잠시 집에서 쉬면서 다음의 수칙에 따라 살 것이다.


1. 정서가 많이 불안해지면 의사와 상담한다.

나에게는 우울증과 불안의 이력이 있다.

이것이 심리적인 것인지 생리적인 것인지 복합적인 것인지 나조차 확실치가 않다.

하지만 시간대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아,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의 생리적 문제가 있을 확률이 크다.

심리적인 요인이 주된 것이라 해도 약물치료는 보조적인 도움이될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개선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나는 즉시 의사와 상담하여 도움이 되는 여러 시도를 해 볼 것이다.

이미 프로작과 알프라졸람을 먹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끊어볼 생각이다.

금단 증상이 있겠지만 한 번 해볼 것이다.

그 이유는 큰 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약의 부작용도 지겹다.

알프라졸람을 1년 이상 먹으면 나중에 치매를 발병률이 8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는 글을 본적도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입맛과 성욕이 하나도 없고 생기도 없다. 

결국에는 약없이 혼자서 일어서야 한다. 그러고 싶다.

일단 약을 끊었다가 악화가 된다면 즉시 약을 다시 먹을 것이다.

50년 후 때문에 5분 뒤에 죽을 수는 없으므로.


2. 사람에게 기대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지금 나의 정서는 매우 불안정하다.

머리의 70%는 우울과 불안에 차있고 정상 작동하는 나머지 30%의 부위가 그나마 나를 잡고 있는 것 같다.

이 내면의 공허함을 외부의 무언가로, 사람으로, 특히 이성으로 채우려는 갈망이 엄청나게 일어난다.

원래부터 극단적인 나의 성향이 위태로운 절벽에 선 지금, 매 순간마다 엄청난 경계에 끄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목마름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분명 쥐약을 먹게 될 것이다. 한 순간의 달콤한 맛과 향이 위안을 주겠지만 경험상 후에 상상도 못 할 엄청난 고통이 따라올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나에게는 쥐약과 음식을 구분할 분별력이 없다.

마음이 안정이 될 때가지 당분간은 냄새가 나는 것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

지금 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칼로 볏단을 베듯이 단호하게 쳐내야 한다.

소통을 해야 한다면 아침에 있을 났을 때와 자러 갈 때 두 번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

그 이외에는 전화기의 알림을 꺼둘 것이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할 것이다. 

이 정도가 지금의 나로서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을 타인의 선택에 기댈 수는 없는 것이다.


3. 명상을 한다.

평상시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만으로는 지금 나의 부정적인 상태를 역전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생각을 단 5분이라도 온전히 유지하려 하지만 어느새 무의식은 절망의 소용돌이로 나를 삼켜버린다.

따라서 의식적인 자극을 강하고 지속적으로 주어 무의식까지 변화시키야 할 것이다.

언젠가 뇌의 가소성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뇌는 신경회로가 만들어진 방향으로 작동하고 강화된다.

신경회로는 매일 매일의 생각과 경험에 의해 변화된다.

최근에 심해졌다고 하여도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부정적이고 불안한 생각이 나를 지배해왔으므로 나의 시냅스는 그런 방식으로 형성 되었을 것이다.

그 시냅스를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안정적이고 자급적이며 지속가능한 방법이다.

뇌가 어느정도 긍정적인 신경회로를 구성할 때까지 의식적인 노력에 시간을 많이 들일 것이다.

그 수단은 단전호흡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믿음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효성이다.

이것이 꿈이면 어떻고 현실이면 어떠한가. 고통과 행복은 실제한다.

단전호흡은 몸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단전이라는 부위에 집중한 상태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단전이라는 곳에 집중을 하던 코끝에 집중을 하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으나 예전에 잠시 배운 것이 단전호흡이니 이 방식대로 해보려 한다.

깊이가 있는 분야라 나는 아는 것이 없지만, 경험해본 결과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희안하게도 효과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는 순간 효과가 느껴졌다.

이번에는 더욱 집중해서 해 볼 생각이고 필요하다면 수련원에 갈 생각이다.

단전이라는 부위가 몸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 하니, 이 점이 심리적인 부분에도 한 몫할 것 같다.

처음에는 단전이라는 위치가 애매하게 느껴졌으나 하면 할수록 단전이 실제로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진다.

단전에 집중을 하려고 할 때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일 수록 생각이 빠르게 세어 나간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고 단전에 집중을 하지만 5초만에 생각은 단전을 교묘하게 벗어나 있다.

하지만 호흡이 잘 되는 날에는 호흡을 하면 할수록 집중이 잘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혼란하고 불안할 때는 물론이고 당분간은 눈을 떠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단전호흡에 쓰려고 한다.

이 훈련으로 이 요동치는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음의 조율이 틀어졌을 때도 이 방법을 익혀두면 빠르게 재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4.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산다.

평상시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려 노력할 것이다.

우울한 상황에서는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긍정적인 것만 보고 듣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과, 그림, 글, 영화, 사람(사람은 당분간 피한다)을 옆에 둔다.

가능한 부정적인 모든 것을 피할 것이다.

기쁨이건 슬픔이건 너무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것도 피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중독성이 있다. 

그 늪에 빠졌을 때는 잘 못 들어왔음을 깨닫고 즉시 나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살아있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내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아침 햇빛을 본다.

가능하면 해가 뜰 때 햇님과 같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햇빛은 생체 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꽃과 나무, 물, 하늘, 새를 보러 자연에 나간다.

자연을 보면 기분이 좋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낮 동안에는 맑은 정신으로 활동하고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잠이 오는 흐름을 몸이 기억할 때까지 의식적으로 연습니다.

이 규칙적인 습관은 건강을 찾은 뒤에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항로가 벗어 났을 때에도 오래 헤매지 않고 몸이 기억하는 원래의 자리로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6. 바쁘게 생활한다.

명상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면서 계속 바쁘게 생활한다.

가만히 있으면 우울함과 불안을 더 의식하게 된다.

가능한 한 생각을 깊게 하지 말고 몸을 움직여 뭐가를 한다.


7. 하루에 1%씩 좋아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며칠만에 이 상태에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뇌에도 관성이 있기 때문에 너무 빠른 변화는 오히려 뇌가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도록 저항하게 만든다고 한다.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야 한다.

노력을 해도 헤매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히려 더 나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나아가야 한다.


8. 견디기 힘들 때 다음을 생각한다.

흐린날에는 코스모스도 슬퍼 보인다. 
코스모스가 원래 화사한 꽃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이 세상 전부인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니다. 
지금 영원할 것 같은 그 시간도 절대 영원하지 않다.

불안과 우울은 실체가 없다. 처음에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그 감정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져서 사건에 상관없이 그러한 감정들이 일어난다.
괴로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 온 구름을 걷어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나쁜 감정은 나쁜 생각을 불러오고 나쁜 생각은 다시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좋은 감정은 좋은 생각을 불러오고 좋은 생각은 다시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이 순환 고리를 기억한다.

네가 온전했던 때를 기억해라. 지금 그렇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건강했고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그게 너의 본래 모습이다. 돌아갈 수 있다. 
하루 중에도 온전할 때가 있고 흔들릴 때가 있다.
온전한 시간을 조금씩 길게 유지해나가면 된다.

걱정마라, 아프겠지만 그 정도로 당장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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